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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침묵만이 배반하지 않는, part. 1》
Exhibition 《Only Silence Does Not Betray, part. 1》
2026년 4월 4일 (토) - 4월 19일 (일) *월, 화 휴관
13:00–19:00
팩션 faction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6길 26 지하1층)
Motoko + 하상철 (@motoko.v_s + @hasc.default )
Marina (@bbe.morgan )
큐레이터: 윤태균 (@einox_ )
주최/주관: 팩션
발화는 양̧̢̰̫̱̃̊͆̍̓̈́̈́̾̊͢͠식̶͇͇̳̗̝͌̏̊́̒̈̀͂̔̚화̨̦̟̲̉̅͆̔̔͋͌̑̓ͅ된̯͓͎͙̞̦̱͎̝̞̍̌̃́̽ 담̧̘̘͔̻͈̄͛̔͊̓̒͆͝ͅ론̷̡̻̦̮̩͍̟̗͌̌̄̂͆̆͋͘͜͟͝과̧̡̦͚̮͚͚̫̉͐͒́̄͛͠ ス̙̥̣̩̊͐̄̾̽̂͟͟Ι̨̧̻̫͇̿͋̑̇͋́̄식̰̖̝̣̣̤͍͓̆̃͒̊̽̄͊̆͗͑ͅથ̢̺̜̮̱̜̈́̾̓̔͒̓ͅ 껍̴̧̛̫̺̹̗̬̗̲̅̏̆̓લ̴̢̢̛̼̬̳͈̭̉̾̒̊̋͂̂̏̕͜͟ા̛͔̩̘̣̗̺̄̄̀̀́̔́͐͘⌝̛̬̬̟̞̈̑́̈͛͊̔͝͠ͅᥣ̷̱̮̰̝̼͙̯͑̿̀̑̌̇͊̅̂͟ͅ 안̢̺͖̠̝̄͆͋̔̑͛͝ 공̢̻̥̥̤͉̫̌̽̃͋̽͛̋͘͜͡허̹̹͎͇͐̃̓̆́̕͟͡함̨̡̨̰̦͇̯̗̀̋̎̀͡ના 잠식되ન 실재를 배반하⌝ᥣ 일쑤다̆̎̆̎. スΙ식ગ ュ ヱય타분한 ⌝ᥣ표의 회집은 영̸̛͚̜̦̥̤̯͛̽̓͒̂̀͢͡͝도̸͍̱̟̹̰͔͉̜̮̾̂̑͑̐͠로̶̧̲̱͍̗̥͓̜͓͖̈́̐̒́̆̑̊̚̚͞서̵͍͕̝̤̪͎͈̓̂̇̒̋̚͢͠͞થ̴̧̫̳̼̆͑̾̔͢͠͝ 침̴̢̖̱͕̮͓̺͔̘̉̈́̓̾͗̍̄묵͔̫̹͎̣̟̘̍̂͂̐̕ગ ටㅏ닌 차̴̰̯͍̯̯̝̫̑̈́̅͌͗͢͢͢ગ̢̥͔̻̳͎̺̖̬̐͂͆̌̒͜͞ ન̵̡̦̤̪̱̼̻̯̝̦͑̏͌̓͌́̊̀̑͘ુ̶̲̱̠̠̹̎͛́̓̄͆̈́͒̍̚͟ૂ̷̥̭̗̟́͋̈̒͑͛̕͢ͅ는̴̡͍̳̙͓̔͆͗͐̎̍̑̅͟͢ 반̡̢̪͙͉̠̣̻̈̀͊̈́̓͞복̶̬̹̼͍̫͕͈́͌̿̐̀̑̿̕͞͠만을 야̆̎̆̎̆̎⌝ᥣ할 뿐ગ다̆̎̆̎̆̎. 전⋌∣는 주̶̨̜̯̞͐́͐͊̔̓̇̎͜변͇͍̖̣͚͚̹̬̟̩́̇͆̿͆̀͞음-̸̯̗͔̼̼̲͔͚̅͗͊͒͊͗̊̍̒͘을̵̧̲̰̱͐̅̓̌̅̆͂͘ͅ 증̷̧̡̟̹̺̮̟̇̔̀͑͗̌͘ͅ폭̧̢̡̲̖͍̺̀̀͆̐̅̊̌̚͞⋌̣͓̰͇̭̦̈́͋͋̍̌̚∣̧̝̭̺͔͚̝͇̏͋̌͂̉키̘̙͔̲͔̥̇͂̏̏̾͗͆̽ͅ거̛̛̤͓̰͚̯͈̖͓͕̮̃̅̀͆나̢͉̞̳͈̫͈̎̂̃͆͆͡ 합̨̢̪̯͓̼͚̿̐̈̋̊͗̐̈́͆͜͟͢͠성̶̜̟̥̘̙͉͍̀̃̈́͋̈̐̚͞된̷͎̤̖̳̭̝̞͉̤̿͛͛̐̌̀̃̐ 가̵̡͖̯̜̣́̿̍͗̊͐͝ͅ상̸͕̙̱̮̼̰̏̅̋̏͂̽̉͝적̨̤̻͉̠̤͆͗̎͆̋͛̆̕͜͠ 침̴̟͖̱̩̘͇͕͖̾̆͗͛̏̎̎͝묵̵̨̧͇̬͆̀̂̔̀͜을 제⋌∣한다̆̎̆̎.
말하⌝보여̆̎̆̎̆̎줌, ュયヱ 쓰⌝ᥣ가 불સꔌ는 ꔌ해̆̈̆̈̆̈는 항상 ગ를 해̆̈̆̈̆̈결하⌝ᥣ 위한 다̆̎̆̎̆̎음થ 단계를 요̆̈̆̈̆̈구한다̆̎̆̎̆̎. ̸̵̸̧̢̨̧̨̥͓̬̤͚͎͕̼͎̲̭̼̟̣̫̹̯̣̖̖̞͔̰͖̯̹̰̫̦͚̗̰̭͙͙͚̼̥̗̜̦̰̫̫̓̈̏̌͋̃̈́̆͆̀̔̌̎͒̒̓̓͊̆͆̿͊͗̿̏̎̎̀̽̄̿̃͌̍̐̆̋̇͐̓͆̎̋̎̔̇̿̈́́̾̔̊̕͜͢͟͢͜͢͡͞͝͞͠͝͠. 한계ના 다̆̎̆̎다̆̎̆̎라 ⩟⩟로 붕괴하는 ‘비スΙ식’થ 상૯પ્ર. 박̸̧̳̜͚̬̺̐̓̀́͗͌͟제̷̧̭͚̯͙͕͔͎̰͚̄́̀̏͗̄͝된̷̟͓̯̜͎͔̂̍̓̈͛̐̂͟͢͞ 진̶̘̰̪͕̳͍̃́̌̀̓̔̈͌͠실̷̛̳̹̲̖͓̜̹͈̊̋͌̃ͅ을 뒤흔들ヱ 존재થ 주권적 ય듬을 회복하기. 예술ગ 도달할 수 있는 경スΙ는 ⌝강도적 ⌝ᥣ호 ュ자̆̈̆̈̆̈체થ 과잉ગ다̆̎̆̎̆̎. ュયヱ 우̶̤͔͍͕̦̝͖͉͛̉̿͛̃́́͢͟͞͡͡ય̵̨̦͖͕̮͙͓̈́͆́̈́͌͛͜͢ન̸̧̼̲̖͈͉̱̘̋͒̇̈͘͘͞͡͠ા̧̦͉͖̮̲̲̱̬̎́̒̏͂̌͘͜게̵̵̸̶̨̡̢̨̛̠̝̙̱̮̤̳̺̤̬͖͓̭͍̙̞̯̹̭̦̣̣̺̜͔̲̙͙̱̗͕̝̥̹̼̠̏̎͗̒͋̂̉̄̔͂̆̓̀̒͛̇̌̐̎̅̅̆̏̔͋̑̆̎̓̆͌́̎̒̈́͊͛̓̆̊͒̂̓̀͌̽͐̎̃̇̏̐̾̏̚͘̚͘̕͘͟͢͟͠͞ͅ 주̧̛͖̬͈͈̟̾͗̇̑̔͊͂͢͝͠ન̨̢̱̹͓̯̓̓͗̓͑̊̎͂͘̚진̷̢̜̳̠̜̓̿̆̀̐̓̀̄̓ 미̡͈͚͓̱̭̫̬̪̳̒̒̑̀͒̽̀͘͝͠덕̶̪̪̥̱̗̮͈̺̦̑͛͒̓̕͜͝͝은 スΙ식થ 파산 ગ후 ગનスΙ는 깊은 침묵을 견વ는 것ગ다̆̎̆̎̆̎.
예술은 양식화된 담론과 헛도는 발화에 의해 잠식당한다. 과도한 진술과 설명, 그리고 해석과 해명에 실망한 적은 없는가?혹은 강도와 발화의 손쉬운 일치에 위화감과 불안을 느낀 적은 없는가? 고리타분한 기표만의 과잉은 영도로서의 침묵이 아닌 차가운 허무의 반복만을 야기할 뿐이다. 우리에게 새로이 주어진 미덕은 (인간) 지식의 파산 이후 이어지는 깊은 침묵을 견디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변증법과 대리보충을 우리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영원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변증법 없는 말하기와 마구 쓰기를 통한 지식의 과잉.
비변증법과 열역학적 쓰기.
현시적 이미지는 언어가 사물의 실재를 포착하지 못한 채 공회전하며 만들어내는 마찰열에 불과하다. 공회전을 멈추자. 그리고 우리는 이 침묵을 빈 공간으로 내버려 두는 대신, 변증법적 타협이 삭제된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순수한 논리의 운동을 수용해야 한다.
영원한 가치를 보존하려는 집착이나 허무한 소멸을 향한 탐닉을 넘어,
침묵은 시스템이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나아가는 냉정한 전개 과정을 드러낸다.
침묵;
의미의 보충을 거부하고 구조의 비정한 확장을 긍정하기.
대상의 기이함과 신비성을 벗겨내고 우리에게 무관심한 실재를 긍정하기.
세계는 말하지 않는다.
Motoko + 하상철, Signal Scope Society, 2026, 35mm 리버설 필름(135), 50mm 렌즈, LED, DC 웜기어 모터, 아크릴, 목재 및 금속 구조체, 커스텀 전자 회로, 모듈러 신시사이저, 표면 트랜스듀서, 콘덴서 마이크, 지오폰
<Signal Scope Society>(2026)는 19세기에 이미지를 물질화하고자 했던, 그리고 그 물질화된 이미지에 움직인다는 인상을 만들어 다시 비물질-환영으로 전환하고자 했던 당대의 열망에 기반한다. 본 시스템은 당시의 장치적 시도와 비전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전압 제어 신호와 기계 구조의 결합으로 재구축하는 동시에, 공간의 환경을 매질로 삼아 동시적 변화 속에서 되먹임의 고리를 형성하는 신호의 연결망으로 작동된다.
공기와 진동으로 수집된 공간의 물리적 조건은 모듈러 시스템의 입력 장치로 흘러 들어, 패칭된 비/구조적 경로 속에서 재가공된다. 신호는 다시 출력 장치를 통해 공간의 물리적 조건을 갱신하며 세 대의 수제 장치를 제어하는 구조를 만든다. 21세기 이후 웹의 데이터로 영원히 부유하게 된 ’죽이는 자‘, ’죽어가는 자‘, ’죽은 자‘의 이미지는 분해되어 35mm 리버설 필름의 16프레임의 원형 배열로 고착되고, 물리적인 회전 운동을 통해 환영으로 되돌리는 공정을 수행한다.
장치들의 불완전한 체계 속에서, 신호에 따른 비/주기적 점멸은 프레임과 프레임의 사이, 환영이 발생하는 역치의 사이를 탐색한다. 기계적 마찰의 궤적을 따라 망막에 남겨지고, 고막을 두드리는 흔적으로서, 사진적-이미지와 영화적-이미지, 그 사이의 어떤 상태를 유영하며 소리와 이미지가 지각되는 조건과 환경을 환기한다.
Marina(정모건), Behave, 2026, 다채널 사운드, 믹서, 앰프, 트랜스듀서, 서브우퍼, 무전기, 마이크, 케이블
<Behave>(2026)은 발화 주체의 물리적 내부를 탐구하며 소통을 위한 기존의 확성 체계를 정반대로 뒤집는다. 통상적으로 소리는 외부의 청자를 향해 방사되지만, 여기서는 소리의 진동이 발화자 본인의 유기적 질감 안으로 수렴된다. 입이라는 기관이 단어를 뱉어내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기 이전의, 순수한 공명통으로서의 상태를 상정한다. 입 안의 공간은 외부로 방출된 소리가 획득하는 사회적 의미나 기표의 질서로부터 격리된 지점이다. 껍데기 안의 소리는 전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오직 물리적인 진동의 되먹임과 구조적 울림으로만 존재한다.
기존의 재생 장치가 밖으로 내뱉는 외부의 소리를 수혜받았다면, 여기서 관객은 확성된 소리의 수혜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재생 시스템의 내부로 침잠한다. 발화 주체의 유기적이고도 기계적인 진동에 동기화되는 경험을 한다. 이는 지각의 조건을 외부의 대상에서 내부의 발생학적 층위로 옮겨놓는다.